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

🔖 평범한 사람들도 이,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감정을 알까요? // 지옥을 / 공간이라고 믿는 사람들과 / 시간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 나를 가운데 두고 어리둥절해진 채 서로 바라보았다


🔖 나는 미사일의 탄두에다 꽃이나 대일밴드, 혹은 관용, 이해 같은 단어를 적어 쏘아올릴 것이다*

*사실상의 인간, BINA48의 말

내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다 / 사고 현장에 우두커니 서서

나는 왜 떨어지고 있는 것인가 점심은 먹고 떨어지는 것인가 옷매무새는 잘 여미고 떨어지는 것인가 몇 층에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인가 나는 내가 떨어지는 모습을 처음 목격하기 때문에 내가 떨어지는 것을 끝까지 내버려둔다 떨어진 것이 내가 확실한지 알기 위해서

난간 위에서 누군가 외친다 / 밑에 떨어진 사람 없어요?

아직 다 떨어지지 않았지만 일단은 나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떨어지는 나를 지켜보는 중인 내가 나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이미 누군가 떨어진 적이 있다면 그것도 나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이미 떨어진 사람이 파다하다면 내가 파다하다고 해야 하는 것인가 과거에 떨어진 나를 수습하기 위해 떨어지고 있는 중인 나를 그만둬야 하는 것인가 이렇게 오래 떨어지고 있는 중인 나를 사람이라 불러도 괜찮은 것인가

내가 도착하지 않는다 운동화와 뿔테안경이 도착한 지 한참 지났지만 내가 도착하지 않는다 가발과 속눈섭이 찰랑찰랑 내려앉은 지 오래됐지만 내가 도착하지 않는다 손발톱과 치아가 후드득 쏟아진 후에도 내가 도착하지 않는다 가슴과 엉덩이, 눈동자와 눈빛이 뭉개진 후에도 내가 도착하지 않는다 전봇대마다 실종 전단이 들러붙은 후에도 나는 도착하지 않는다 내가 나를 지나가버린 것을 끝까지 모른다

내가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꾸벅꾸벅 존다 / 꿈결에 사고 현장을 벗어나버린 줄도 모른다 / 걷는다 어딘지도 모른다


🔖 실패한 번역

(전략)

소중한 비극을 뒤져 발견한 / 단 한 방울의 눈물이 전혀 특별하지 않아서 / 남은 일생 열심히 울겠지 / 역시 시인이란……


🔖 치(齒)

하나는 안다 / 열까지는 모르고 / 창밖에 비가 온다는 것은 이곳이 수조의 내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 사람과 점심을 먹는다

토끼를 키우고 싶지만 토끼의 고독사가 두려운 사람과 점심을 먹는다 / 토끼를 키우고 싶은 사람이자 반드시 토끼를 고독하게 만들 예정인 사람이라거나 / 토끼를 키우고 싶은 것과 별개로 토끼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거나 / 열은 모르지만 / 토끼 이야기에 열중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안다 / 점심을 먹는 사람에게 토끼는 / 긴 귀와 짧은 꼬리와 알비노와 간 그리고 기능성 앞니가 아니며 / 소동물치고 크게 자라는 덩치와 공격적인 번식력과 20세기 대량학살 대상은 더욱 아니다 / 다만

나는 토끼가 귀엽습니다 / ; 이 문장은 이상하다 / 토끼를 귀여워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토끼를 귀여워하는 자신을 소외시킨다 / 우리는 토끼가 귀엽습니다 / ; 이 문장은 틀렸을뿐더라 토끼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눈앞의 적을 향해 온힘을 다해 멸시와 저주를 퍼붓는 / 그것이 토끼랍니다 / 어차피 잡아먹힐 것이라는 사실 하나를 스스로 잘 안다는 증거이지요 / 목구멍으로 커피가 한 방울 굴러떨어진다 / 토끼의 최선과 / 목구멍의 최선

점심을 먹던 사람이 카메라를 내밀며 말한다 /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세요 이를테면 토끼나 불로소득 같은 거요

최선을 다해 웃어 보인다

렌즈 밖에서 비가 온다는 것은 이곳이 사진의 내부가 아니라는 것 / 살아있는 세계라는 것 / 하나를 안다

푸줏간의 창밖에 비가 오는 것은 모른다 / 빛을 향해 자라나는 토끼의 앞니를 모른다